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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트랜드

인도 카르나타카 커피, EU 산림벌채 규제 시험대에 오르다

by perfectcoffeenews 2025. 9. 19.

인도 카르나타카 커피

 

인도의 커피 심장부인 카르나타카주, 즉 코다구·치크마갈루루·하산 지역이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규제 앞에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오는 2026년 1월부터 발효되는 ‘산림벌채 규제(EUDR)’는 커피를 포함한 주요 농산물에 대해 “벌채 없는 재배지”임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단순히 농가의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며, 정밀한 지리좌표 혹은 폴리곤 맵핑 데이터가 필요하다. EU는 인도 커피의 최대 수입처다. 전체 수출량의 약 60%가 유럽으로 향하고, 카르나타카는 인도 수출 커피의 3분의 2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규제 대응의 성패는 곧 카르나타카 농민과 인도 커피 산업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소농들의 불안

커피 가격이 오랜 기간 불안정을 겪다가 최근에서야 상승세를 보이자, 농민들의 기대는 커졌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가 이 회복세를 위협하고 있다. 카르나타카 커피재배자연합의 KK 비슈와나스 부회장은 “지속가능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소농들이 감당해야 할 행정적·경제적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EUDR은 2020년 12월 31일 이후 산림을 개간한 토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EU 시장에서 퇴출한다. 4헥타르 이상 농장은 경계 폴리곤 데이터를, 그 이하의 소규모 농장은 지리좌표만 제공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농민들은 “GeoJSON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코다구에서 열린 한 워크숍에서 농민들은 유럽 시장 접근이 막히면 다른 시장에 헐값으로 커피를 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커피가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생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는 곧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커피위원회의 대응: 디지털 도구로 격차 줄이기

이에 인도 커피위원회는 ‘인디아 커피 앱’을 통한 농가 등록제도를 가동 중이다. 농민은 앱을 통해 자신의 재배지를 지도에 표시하고, 현장 담당관이 이를 검증한 뒤 수출업자와 공유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농민이 값비싼 컨설턴트 없이도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위원회 관계자는 “인도가 EUDR에서 ‘저위험 국가’로 분류된 점은 긍정적인 신호”라며 “앱을 통해 단일화된 인증 플랫폼을 제공하면 농민과 수출업자 모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플랫폼이 현장에서 얼마나 원활히 작동하느냐가 규제 대응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위기 속 기회: 친환경 이미지의 부각

모든 목소리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업계 인사들은 이번 규제가 인도 커피의 가치를 국제 무대에서 증명할 기회라고 본다. 유럽 바이어들은 이미 규제 시행 전 인도산 원두를 비축하기 시작했으며, 카르나타카의 그늘재배(shade-grown) 커피는 환경 친화적 재배 방식 덕분에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다구 비라즈페르의 3세대 농부 찬다판다 프르즈왈 푸반나는 “우리는 원래부터 원주 나무 그늘 아래에서 커피를 재배해 왔다. 이는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이번 규제가 오히려 우리의 강점을 강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호황과 불안한 균형

2024–25 회계연도 인도의 커피 수출은 3.9만 톤, 1만5,449크로어 루피(약 2조7천억 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큰 폭의 성장을 보였다. 로부스타 가격 상승과 이탈리아·벨기에·영국 등 유럽 수요 확대가 이를 견인했다. 그러나 지나친 EU 의존도는 산업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비슈와나스는 “국내 시장이 지나치게 취약하다”며 “치커리 혼합으로 순수 커피 소비가 적고, 커피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수 기반을 강화해 수출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의 호소: 정부의 동반자 역할 필요

삭레슈푸르 농부 산토시 가우다는 “우리는 우리의 커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규제가 복잡한 관료적 미로가 된다면 소농인 우리는 낙오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수출업자뿐 아니라 농민 곁에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커피 산업의 갈림길

카르나타카의 언덕에서 자라는 인도 커피는 그 품질과 지속가능성으로 오랫동안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EUDR 규제는 그 자부심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인도 커피가 이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세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첫째, 소농들이 얼마나 빠르게 디지털 인증 체계에 적응할 수 있는가. 둘째, 커피위원회의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원활히 작동하는가. 셋째, 업계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국제 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을 프리미엄으로 바꿀 수 있는가이다. 결국, 이번 규제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니라 인도 커피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다. 카르나타카의 커피가 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지, 아니면 소농들의 부담으로 퇴보할지는 앞으로 1년 반 남짓한 준비 기간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