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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트랜드

인스턴트 커피의 반전…미국 블라인드 테스트서 드립보다 ‘우세’

by perfectcoffeenews 2025. 10. 17.

왼쪽 인스턴드 VS 필터커피

‘인스턴트 커피는 드립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뉴스레터 필터 US(Filter US) 가 진행한 대규모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참가자의 77%가 인스턴트 커피의 맛을 더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랫동안 ‘간편하지만 맛없는 대체재’로 여겨졌던 인스턴트 커피가 이제는 ‘충분히 즐길 만한 커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번 실험은 필터 US의 새 에디토리얼 코디네이터가 맡은 첫 프로젝트였다. 그는 자신을 “커피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뉴욕 맨해튼의 작은 아파트 부엌 한켠,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매일 아침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리고, 전동 거품기로 만든 두유 폼을 얹은 후 십자말풀이를 푸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이 조합은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인스턴트 커피로 바꿔보라고 했으면 아마 코웃음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는 그마저도 놀라게 했다. 필터 US 팀은 ‘인스턴트 커피가 정말로 그렇게 형편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기자단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드렉셀 식품연구소(Drexel Food Lab) 의 조너선 도이치(Jonathan Deutsch) 교수와 연구원 레이철 셔먼(Rachel Sherman)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두 연구진은 총 84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브랜드를 모른 채, 24종의 인스턴트 커피를 시음했다. 이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제품들을 선별해, 동일한 조건에서 추출한 드립 커피와 다시 비교했다. 예상과 달리 결과는 명확했다. 전체 참가자의 77%가 인스턴트 커피의 맛을 더 선호했다. 고급 드립 커피보다 인스턴트 커피가 더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을 낸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더 놀라운 점은 ‘승자’가 고급 서드웨이브 브랜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대중적인 브랜드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도이치 교수는 “솔직히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커피 시장엔 멋진 스토리와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많아요. 그런 브랜드의 포장을 보면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결국 단순한 제품이 가장 많은 사람의 입맛을 잡았어요.”

 

그는 이어 “어떤 제품은 스토리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며 “케첩 시장에서 하인즈(Heinz)를 이기기 어렵듯, 초콜릿 시장에서 리스(Reese’s)를 능가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인스턴트 커피도 그 자체로 완성된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종종 ‘비싼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믿는다. 하지만 도이치 교수는 이번 실험이 그런 생각을 뒤집었다고 말한다. “품질 좋은 원두, 멋진 로스터리, 지속가능성 캠페인… 이런 요소가 다 중요하지만, 결국 커피는 ‘일상’이에요. 사람들이 매일 손쉽게 즐길 수 있어야 하죠.”

 

그는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 홀푸즈(Whole Foods) 의 자체 브랜드 ‘365 비엔나 로스트(Vienna Roast)’ 를 드립 머신으로 추출해 마신다. “가격 대비 품질이 탁월합니다. 비싼 커피를 마셔봤지만 실망한 적이 많아요. 인생은 싸고 맛없는 커피를 마시기엔 너무 짧죠. 그래서 이 커피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이번 테스트를 진행한 뒤 그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단순히 ‘편리한 대체재’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요즘 인스턴트 기술이 워낙 발전해서, 풍미 손실이 거의 없더군요. 어쩌면 출근길에 굳이 드립을 고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인스턴트 커피 시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설탕이나 크리머가 섞인 ‘믹스커피’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인스턴트’ 라는 새로운 세그먼트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마운트하겐(Mount Hagen), 미국의 블루보틀(Blue Bottle), 한국의 프릳츠(Fritz) 등이 출시한 동결건조형 인스턴트 커피는 “드립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미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필터 US의 실험은 이 ‘고급 인스턴트’조차도 ‘기본형 제품’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단순하고 균형 잡힌 맛이, 대다수 소비자에게 더 큰 만족을 줬다. 이는 커피를 ‘예술’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즐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뉴욕 커피 업계 관계자들 역시 이 실험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한 로스터리 대표는 “이건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커피 문화의 전환점”이라며 “소비자가 원두의 출처보다 ‘지속 가능한 일상성’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가 ‘커피의 민주화’ 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과거 커피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기술 발전으로 누구나 간편하게 높은 품질의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는 커피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테스트의 주인공인 에디토리얼 코디네이터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좋은 커피란 결국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커피예요. 가격표가 아니라, 그날의 기분과 시간, 공간이 맛을 완성하죠. 인스턴트 커피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게 진짜 ‘스페셜티’ 아닐까요?”

 

이번 실험은 커피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매일 마시는 커피는 정말 당신의 취향에 맞는가, 아니면 단지 비싸서 좋은 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