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영업자들의 소득 현황이 충격적인 수준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개인사업자 1146만여 건 가운데 860만여 건, 즉 전체의 75%가 연 소득 1200만 원, 월로 환산하면 100만 원 미만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곧 자영업자 4명 중 3명이 한 달에 최저 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점은 소득이 전혀 없다고 신고한 자영업자만 95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빈곤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소득 악화 추세의 지속
자영업자의 저소득 비중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다. 2019년에는 연 소득 1200만 원 미만으로 신고한 건수가 약 610만 건이었으나, 2020년 660만 건, 2021년 790만 건으로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강력한 방역 조치와 영업 제한으로 자영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소득이 급감한 결과다. 그럼에도 팬데믹 종료 이후 소득 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2022년 들어서는 860만 건으로 더욱 증가했다. 소득이 ‘0원’이라고 신고한 사례 역시 2019년 64만 건에서 2021년 83만 건, 2022년 94만 건으로 확대됐다. 이 같은 추세는 한국 자영업 생태계가 경기 변동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회복 탄력성 또한 낮다는 점을 드러낸다. 소비 위축이 길어지고, 고물가·고금리라는 거시경제 환경이 자영업자들의 재기에 발목을 잡으면서 단기적 충격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 낮은 진입장벽과 플랫폼 종속
전문가들은 한국 자영업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한다. 첫째, 임금근로자 시장에서 밀려난 인력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자영업으로 몰린다. 자본금과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도 창업이 가능하다는 특성이 경쟁 과잉을 낳는다. 둘째, 음식 배달 등 주요 업종은 플랫폼 기업의 수수료 구조에 크게 종속돼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광고비, 배달료, 수수료는 결국 자영업자의 순이익을 잠식하는 고정비로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경기 불황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적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실제로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3.5%로, 미국(6.6%), 캐나다(7.2%), 독일(8.7%), 일본(9.6%)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대응: 원스톱 지원체계와 패스트트랙 확대
정부는 최근 ‘소상공인 회복 및 안전망 강화’라는 이름으로 대책을 내놓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위기 상태의 소상공인을 조기에 발굴하고, 정책 금융기관·민간은행과 연계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센터에 신용회복위원회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원스톱 통합 창구를 운영해 경영진단, 채무조정, 재기 지원을 한 번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서울회생법원과 협력해 시행 중인 ‘개인회생·파산 패스트트랙’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소상공인이 과도한 채무로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신속히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기존 제도에서는 신청부터 심리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폐업 이후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패스트트랙은 상담과 변제계획 설계, 서류 준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법원이 전담 재판부를 운영해 시간을 대폭 줄인다.
금융 지원의 연장: 만기연장·상환유예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시기 시행했던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제도를 상당 부분 유지하기로 했다. 2020년 4월 시작된 이 제도는 총 4차례 연장돼 2년 6개월간 지속되었고, 2022년 9월에는 ‘연착륙 지원방안’을 통해 2023년까지 연장됐다. 올해 6월 기준으로는 잔액 약 44조 원, 차주 21만 명 규모가 여전히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정상 차주는 만기 재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연체나 폐업으로 연장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소상공인 119 Plus’, ‘새출발기금’, 신용회복위원회 프로그램을 통해 채무조정이 이뤄진다. 이러한 금융적 완충 장치는 단기적 파산을 막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출 부담을 더욱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근본적 과제: 자영업 구조 개편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의 근본적 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영업 진입 장벽을 높여 준비되지 않은 창업을 줄이고, 플랫폼 수수료 구조를 개혁하며, 창업 전 단계에서 경영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더불어 내수 회복을 위한 소비 촉진 정책, 지역 상권 활성화 방안도 병행되어야 한다. 박성훈 의원은 “자영업자의 75%가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경제의 민낯을 보여준다”며 “충분한 준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악순환을 끊고, 폐업과 부채로 이어지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불황 속 ‘자영업 빈곤층’의 확대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기 둔화가 이어지고,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단기간에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높은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플랫폼 수수료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이 같은 부담을 소득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결국 ‘자영업 빈곤층’의 확대라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금융·행정 지원을 통해 파산을 막고 재기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영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 구조를 전환하지 않는 이상, 이 위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 스스로의 경영 혁신과 더불어, 정부와 사회가 함께 구조적 개편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준, 기준금리 0.25%p 인하…연내 두 차례 추가 인하 시사 (0) | 2025.09.18 |
---|---|
외식 물가 오르고 채용 축소 이어져 (0) | 2025.09.16 |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확대 적용: 카페 사장님들이 마주할 거대한 변화 (0) | 2025.09.12 |
한국 경제에 드리운 두 가지 그림자: 치솟는 먹거리 물가와 국가 재정 위기 (0) | 2025.09.12 |
한국 프랜차이즈 시장의 대전환: 중국 밀크티 공세와 국내 차액가맹금 논란이 빚어내는 새로운 지형 (0) | 2025.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