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식료품 가격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으며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9월 기준 바나나 가격은 전년 대비 6.9%, 다진 소고기는 12.9%, 볶은 커피는 18.9%나 올랐다. 식품 전반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식품 산업 분석가 필 렘퍼트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언제 가격이 내려가느냐’인데, 내 대답은 단순하다.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안정화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품 가격이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9월 다진 소고기 1파운드(약 450g)의 평균 가격은 6.30달러로, 미국 노동부가 1980년대부터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보다 무려 65%나 상승한 수치다. 지난 1년간 다진 소고기 가격은 파운드당 65센트(11% 이상) 올랐으며, 무뼈 설로인 스테이크는 2.35달러(약 20%) 뛰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급등의 주된 원인으로 기후 변화와 공급 부족을 꼽는다. 기온 상승으로 가뭄이 심화되면서 사육 환경이 악화됐고, 사료비와 인건비가 동반 상승하면서 공급이 줄었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7월 기준 미국 내 소 사육두수는 2,870만 마리로 수십 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렘퍼트는 “소가 줄어든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오클라호마주립대 농업경제학과 데럴 필 교수는 “국내 쇠고기 생산이 전체 소비의 90%를 차지하겠지만, 브라질산 수입 쇠고기에는 76.4%의 높은 관세가 부과돼 공급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내 쇠고기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관세와 기후 요인이 중첩되면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커피 가격도 팬데믹 이전보다 두 배로 뛰었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9월 100% 원두커피의 평균 소매가격은 파운드당 9.14달러로, 2019년 12월의 4달러 초반대에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브라질·콜롬비아 등 주요 생산국에서 폭우와 가뭄이 번갈아 닥치며 수확량이 급감했고, 최근 라니냐 현상 재발 우려로 국제 커피 가격은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일리노이대 농업·소비자경제학과 앤드루 헐트그렌 교수는 “커피와 바나나는 생산지가 한정돼 있어 극단적인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며 “이러한 가격 변동은 소비자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처럼 체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정책도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생두의 약 80%를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입하지만, 올해 트럼프 행정부는 브라질산 커피에 50%, 콜롬비아산에 10%, 베트남산에 2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생산자들이 관세 부담을 둘러싼 협상으로 출하를 지연하면서 미국 내 커피 공급이 막히고 있다. 투자은행 UBS는 “수입업체와 로스터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 커피 원두 재고가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커피기구(ICO)는 “미국은 자국 내 생산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수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저렴한 과일의 대명사로 불리는 바나나도 예외가 아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9월 바나나 가격은 파운드당 67센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말보다 10센트(약 18%) 오른 셈이다. 지난해 트레이더 조가 20년 만에 바나나 가격을 19센트에서 23센트로 인상했을 때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셌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바나나 대부분은 중앙·남미산으로, 2023년 기준 과테말라가 40%, 에콰도르와 코스타리카가 각각 16%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산 바나나에도 최대 1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여기에 ‘파나마병(Panama Disease)’으로 불리는 곰팡이성 병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공급이 줄었다. 렘퍼트는 “우리가 익숙한 캐번디시 품종이 병충해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 노동력 부족, 수입관세 등 복합 요인이 식품 가격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렘퍼트는 “식품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와 업계 모두 고물가 시대의 새 기준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의 장바구니 물가 문제는 단순한 경기적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기후, 무역, 노동 구조가 얽힌 복합적 현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식료품 가격이 안정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기후변화와 보호무역 기조가 지속되는 한 식탁 물가는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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